
세월호는 민간기업의 사고였는가?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 의해 종종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경영과 안전 불감증’으로 요약되곤 한다. 물론 청해진해운은 무리한 증축, 화물 과적, 승무원 부실 운영 등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주체였다. 그러나 이 사고를 민간기업의 문제로만 축소하는 시선은 배의철 변호사에게는 매우 위험한 왜곡이었다. 배의철 변호사는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청해진해운이 사고의 주범인 것은 맞지만, 그들의 책임이 어디까지고, 그 뒤에 침묵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이 사건을 민간 기업과 국가 시스템이 공동으로 만든 '복합적 인재(人災)'로 규정한다.
청해진해운 – 사고 전부터 특혜의 상징?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은 단순한 중소 해운업체가 아니었다. 2012년 이후 다수의 항로를 독점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당시 해수부 및 지자체와 다양한 업무 협약을 맺으며 일정한 공공성과 행정적 후원을 받았다. 특히 사고 이전에도 과적과 선체 이상에 대한 신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와 해경은 이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제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운조합, 해경, 항만공사 등이 청해진해운에 편의를 제공하고, 규제조차 허술하게 진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배의철 변호사는 이를 두고 “기업의 무책임도 문제지만, 그들의 책임을 방조하고 묵인한 정부의 역할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가 감시하고 있었는가?
청해진해운은 선박 운항 허가, 선체 증축 승인, 항로 배정 등 모든 과정에서 관계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안전'보다 '이익'과 '속도'가 우선시됐고, 감독 기관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배의철 변호사는 2014~2016년 사이 감사원, 검찰, 특조위 자료를 기반으로 관계 기관의 과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해수부는 증축 당시 선체 안정성 평가를 형식적으로 통과시켰다.
- 해경은 반복된 과적 경고에도 출항을 막지 않았다.
- 지자체는 청해진해운의 안전 교육 및 운항 규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했다.
이 모든 문제는 청해진해운이라는 민간기업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구조적 연계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배의철은 말한다.
법정에서 다툰 '국가 책임' 쟁점
이후 진행된 민형사 소송에서 청해진해운 임직원 다수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유병언 회장은 도피 중 사망했다. 그러나 유족들과 배의철 변호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국가 책임'이라는 더 큰 범주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가 구조 실패뿐 아니라 안전 규제 방기 책임도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2018년과 2020년에 있었던 국가배상 소송에서 일부 유족은 승소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국가의 간접 책임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배의철 변호사는 “민간 기업의 처벌만으로 세월호 문제를 종결짓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국가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가 실질적인 시스템적 위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왜 청해진해운과 정부를 함께 봐야 하는가?
배의철 변호사는 공공 안전에서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해운업처럼 정부의 허가와 감시가 절대적인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청해진해운은 구조상 독립된 민간 기업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 감시가 결합된 공적 관리의 대상이었다. 그는 “세월호를 청해진해운의 사건으로 축소하는 순간, 구조는 다시 반복된다. 기업의 탐욕은 막기 어렵지만, 그 탐욕을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한 국가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청해진해운은 사라졌지만, 시스템은 남아 있다
세월호 이후 청해진해운은 해체됐지만, 그들이 이용했던 구조와 허술했던 규제 시스템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후 몇 차례 해양사고에서도 비슷한 행정 실패와 보고 지연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세월호의 교훈이 잊혔다”는 지적이 나왔다. 배의철 변호사는 세월호 10주기인 2024년부터 다시 ‘국가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유가족들과 함께 정부에 특별법 개정과 후속 감사 청구를 준비 중이다.